
10월 1일, 전곡선사박물관 고고학체험실에 낯선 손님들이 도착했습니다. 루시와 다윈, 세종대왕과 구텐베르크, 다빈치와 스티브 잡스 등 20인의 군상들입니다.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한 시대, 한 공간에서 한 폭의 천 위에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왜 선사박물관에서 인간의 진보를 묻느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임선옥 디자이너는 옷이 그 질문에 가장 가까운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옷에는 인간이 몸을 지키고,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관계를 맺어온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소재와 기술이 바뀔 때마다 옷도 달라졌고, 그 변화를 따라가 보면 우리가 어떤 역사와 문화를 지나왔는지 보입니다. 오랫동안 소재와 옷을 만드는 방식을 탐구해 온 임선옥 디자이너에게 이 질문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AI가, 몸은 손이
이번 작업에서는 인물들의 얼굴을 AI로 생성했습니다. AI는 몇 초 만에 수십 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만들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많아진 지금은 무엇을 선택하고 왜 만드는가가 더 중요해졌다고 느낍니다.
임선옥 디자이너에게 손은 생각을 확인하는 도구입니다. 화면에서는 멋져 보이던 이미지도 천에 옮겨 몸 위에 올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무게와 탄성, 접히는 방향은 만져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 생각이 바뀌기도 합니다. AI로 불러온 얼굴들은 이렇게 소재에 옮겨지고 손으로 드레이핑되면서 비로소 이 공간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기술이 열어준 가능성에 어떤 형태와 의미를 줄지 정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일. 저는 그것이 AI 시대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레이핑, 잠시 형태를 빌려주는 일
얼굴을 입힌 신체를 드레이핑으로 만든 것은 옷의 형태가 정해지기 전, 소재와 몸이 만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임선옥 디자이너에게 드레이핑은 몸 위에 잠시 형태를 빌려주는 일입니다.
이번 작품의 이미지는 한 폭의 원단에 디지털 프린트했습니다. 형태를 만들려고 원단을 잘라 버리는 일을 줄이려는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이끄는 PARTsPARTs가 지속가능한 패션을 고민하며 지켜온 단일소재, 접착, 제로웨이스트의 방식이 몸에서 공간으로 넓어진 셈입니다. 소재의 두께와 탄성, 접히고 이어지는 방식이 이곳에서는 군상의 형태와 공간의 흐름을 만드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천은 전시가 끝나도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시 후에는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의복으로 다시 만들 계획입니다. 하나의 소재가 전시장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쓰임으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이 작업의 일부입니다.





시간의 식탁
전시장 중앙에는 식탁이 놓여 있습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누며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10월 1일 공식 개막식에서는 선사시대의 식탁을 상상하며 케이터링을 준비했습니다. 망개떡과 미트볼, 말린 무화과, 치즈볼이 올랐고, 그 사이에는 돌 모양으로 빚은 초콜릿을 놓았습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손에 쥐고 쓰던 돌을 오늘의 간식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달콤한 돌을 집어 드는 순간,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만들던 아주 오래된 감각을 잠시 떠올려 보시기를 바랐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그 자리에 남은 패브릭과 오브제는 또 하나의 전시 장면이 되었습니다. 지금 전시장을 찾으시면 그 식탁을 지나 군상 사이를 걸으며 작품을 한 방향에서만 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다섯 개의 질문
전시에는 다섯 개의 질문이 있습니다.
- 기원: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 지식: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권력: 누가 위인을 만드는가?
- 진보: 발전은 언제나 진보인가?
- 책임: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한 질문의 답을 찾기보다, 마음에 남는 질문 하나를 가지고 다음 작품으로 이동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질문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지가 이미 하나의 답일지도 모릅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들
전시 제목 'Guests of Time'은 시간의 손님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시대를 살며 무언가를 만들고 남기지만, 긴 시간 속에서는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인물들도, 저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만들고 쓰는 것,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느냐가 모두 미래의 일부가 됩니다. 디자이너로서 어떤 옷을 만들 것인가와 함께, 그 옷을 통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면 점과 이미지가 보이고, 멀리서 보면 하나의 몸과 실루엣이 보입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가신 뒤에도 일상의 작은 선택 앞에서 이 질문이 한 번쯤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이어집니다. 시간의 손님이 되어 한번 들러 주세요.

전시: 시간의 손님들 Guests of Time / 2026년 9월 29일~10월 25일 (공식 개막식 10월 1일) / 전곡선사박물관 고고학체험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평화로443번길 2)

10월 1일, 전곡선사박물관 고고학체험실에 낯선 손님들이 도착했습니다. 루시와 다윈, 세종대왕과 구텐베르크, 다빈치와 스티브 잡스 등 20인의 군상들입니다.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한 시대, 한 공간에서 한 폭의 천 위에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왜 선사박물관에서 인간의 진보를 묻느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임선옥 디자이너는 옷이 그 질문에 가장 가까운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옷에는 인간이 몸을 지키고,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관계를 맺어온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소재와 기술이 바뀔 때마다 옷도 달라졌고, 그 변화를 따라가 보면 우리가 어떤 역사와 문화를 지나왔는지 보입니다. 오랫동안 소재와 옷을 만드는 방식을 탐구해 온 임선옥 디자이너에게 이 질문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AI가, 몸은 손이
이번 작업에서는 인물들의 얼굴을 AI로 생성했습니다. AI는 몇 초 만에 수십 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만들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많아진 지금은 무엇을 선택하고 왜 만드는가가 더 중요해졌다고 느낍니다.
임선옥 디자이너에게 손은 생각을 확인하는 도구입니다. 화면에서는 멋져 보이던 이미지도 천에 옮겨 몸 위에 올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무게와 탄성, 접히는 방향은 만져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처음 생각이 바뀌기도 합니다. AI로 불러온 얼굴들은 이렇게 소재에 옮겨지고 손으로 드레이핑되면서 비로소 이 공간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기술이 열어준 가능성에 어떤 형태와 의미를 줄지 정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일. 저는 그것이 AI 시대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레이핑, 잠시 형태를 빌려주는 일
얼굴을 입힌 신체를 드레이핑으로 만든 것은 옷의 형태가 정해지기 전, 소재와 몸이 만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임선옥 디자이너에게 드레이핑은 몸 위에 잠시 형태를 빌려주는 일입니다.
이번 작품의 이미지는 한 폭의 원단에 디지털 프린트했습니다. 형태를 만들려고 원단을 잘라 버리는 일을 줄이려는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이끄는 PARTsPARTs가 지속가능한 패션을 고민하며 지켜온 단일소재, 접착, 제로웨이스트의 방식이 몸에서 공간으로 넓어진 셈입니다. 소재의 두께와 탄성, 접히고 이어지는 방식이 이곳에서는 군상의 형태와 공간의 흐름을 만드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천은 전시가 끝나도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시 후에는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의복으로 다시 만들 계획입니다. 하나의 소재가 전시장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쓰임으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이 작업의 일부입니다.
시간의 식탁
전시장 중앙에는 식탁이 놓여 있습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누며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10월 1일 공식 개막식에서는 선사시대의 식탁을 상상하며 케이터링을 준비했습니다. 망개떡과 미트볼, 말린 무화과, 치즈볼이 올랐고, 그 사이에는 돌 모양으로 빚은 초콜릿을 놓았습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손에 쥐고 쓰던 돌을 오늘의 간식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달콤한 돌을 집어 드는 순간,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만들던 아주 오래된 감각을 잠시 떠올려 보시기를 바랐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그 자리에 남은 패브릭과 오브제는 또 하나의 전시 장면이 되었습니다. 지금 전시장을 찾으시면 그 식탁을 지나 군상 사이를 걸으며 작품을 한 방향에서만 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다섯 개의 질문
전시에는 다섯 개의 질문이 있습니다.
한 질문의 답을 찾기보다, 마음에 남는 질문 하나를 가지고 다음 작품으로 이동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느 질문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지가 이미 하나의 답일지도 모릅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들
전시 제목 'Guests of Time'은 시간의 손님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시대를 살며 무언가를 만들고 남기지만, 긴 시간 속에서는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인물들도, 저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만들고 쓰는 것,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느냐가 모두 미래의 일부가 됩니다. 디자이너로서 어떤 옷을 만들 것인가와 함께, 그 옷을 통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면 점과 이미지가 보이고, 멀리서 보면 하나의 몸과 실루엣이 보입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전시를 보고 돌아가신 뒤에도 일상의 작은 선택 앞에서 이 질문이 한 번쯤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이어집니다. 시간의 손님이 되어 한번 들러 주세요.
전시: 시간의 손님들 Guests of Time / 2026년 9월 29일~10월 25일 (공식 개막식 10월 1일) / 전곡선사박물관 고고학체험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평화로443번길 2)